"데스크탑 오디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일찍 귀가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팀 회의가 잡히고 야근이 이어진다. 남들은 불금이라고 난리지만 어수선한 회사 분위기에 엎친 데 겹친 격으로 눈앞에 감사가 닥친 마당이다. 이런 분위기와 상황에서 김과장도 별다른 묘책이 있을 수 없다. 끝내 밤 열시를 넘겨 야근이 끝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내와 아이가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향한다. 온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파김치가 되기 직전이다. 그러나 집이라고 해서 어디 한 구석 편히 몸을 뉘일 곳이 없다. 그나마 조그만 방 하나를 정리해 개인 공간을 꾸린 것도 최근 일이다.
우리 주변에서 김과장과 같은 사람은 쉽지 않게 눈에 띈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겨 결혼한 탓에 아직도 아이는 어리고 집에 가면 아이와 놀아주기 바쁘다. 회사를 마치고 집에 온다 한들 더 이상 집도 마냥 휴식처는 아니다. 옹색하나마 작은 방 하나를 정리해 마련한 방에서 종종 PC를 켜놓고 음악을 듣는 것이 짧지만 하루 중 가장 달콤한 시간이다. 결혼 전 나름 투철하게 오디오 취미에 빠졌던 당시 사용하던 진공관 앰프는 창고에서 썩고 있는지 오래다. 지금쯤 불이 들어올는지도 미지수다.
데어드라는 진공관 앰프를 앞에 두고 있으니 수많은 김과장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이제 아이가 한참 커서 거실에 오디오를 늘어놓고 즐기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음악을 안 듣고 살 수 없다. 오늘만 해도 어제 구입한 아델 신보 CD가 배달되어 왔다. 책상 위에서 그를 반기는 음악이 촛불처럼 일렁이기 시작한다.
"디자인"
데어드 DR-100 은 진공관 앰프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못하고 있던 커다란 덩치의 앰프를 꺼낼 필요가 없다. 만일 커다란 2채널 하이파이 메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밤늦게 아파트에서는 어차피 커다란 음량으로 즐기는 건 쉽지 않다. 진공관 앰프의 뽀얀 소릿결, 작지만 작은 볼륨에서도 섬세한 소리를 들려주는 컴팩트한 크기의 북셀프라면 책상 위는 나만의 훌륭한 콘서트홀이 된다.
앰프의 전원을 올리자 오른편 위쪽으로 세알의 진공관이 어린 아이의 볼처럼 발갛게 달아오른다. 진공관은 6N1 과 6E2 그리고 쌍삼극관 12AX7 이 각 한 알씩 꼽혀 있다. 진공관 주변으로는 골드 패널이 마치 유니슨 리서치의 그것처럼 둘러싸여 있어 운치를 더한다. 앞쪽 패널은 오라(Aura)나 EAR처럼 크롬 패널이라서 앞에 있는 사물들을 은은하게 비추어준다.
DR-100MKII 의 전면은 볼륨을 포함해 셀렉터와 세팅 메뉴, 기능 전환 등 꽤 다양한 기능을 위한 버튼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기능은 맨 왼쪽의 디스플레이 창을 통해 사용자에게 알려준다. 검은 바탕에 오렌지 빛 글자체가 진공관 불빛만큼이나 예쁘다. 이 앰프는 기본적으로 진공관 세알을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앰프다. 좌, 우 각 채널에 25와트의 출력을 가지는 소출력 진공관 앰프로 무게는 3.5KG, 크기는 넓이가 24cm, 깊이가 14cm, 높이는 13.5cm 다. 책상 위에 올려놓기 딱 좋은 크기다.
"편의성"
처음 마주친 DR-100MKII를 보았을 때 너무나 귀여운 외관에 반했다. 하지만 이 앰프로 책상 시스템을 꾸미려면 DAC 도 있어야겠고 좀 과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앰프는 단순히 소스기기로부터 받은 신호를 증폭만 하는 앰프가 아니다. 내부에 매우 다양한 기능들이 탑재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별도의 소스기기가 없어도 이 제품 하나만으로 음악 듣는데 불편함이 없다. 우선 USB 입력단이 설치되어 있고 내부에 DAC 가 내장되어 있다. PC 와 연결하면 별다른 드라이버 설치 없이 모든 컴퓨터에서 자동적으로 DR-100MKII를 인식한다. 사용자는 단지 음원 재생 플레이어에서 ‘DARED 24BIT/96KHZ USB DAC’를 선택하면 된다.
한 밤에 맥주 한잔 기울이며 KBS 클래식 FM을 들어도 좋다. 황덕호의 JAZZ 수첩, FM 실황음악 또는 당신의 밤과 음악이 나지막이 책상 위를 음악으로 수놓는다. DR-100MKII 는 FM 방송은 물론 DAB 라디오 방송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스마트폰이나 음원 플레이어와 연결이 가능하도록 3.5mm 미니잭 입력단도 마련되어 있다. 물론 별도의 CDP 등 2채널 아날로그 출력이 가능한 소스기기가 있다면 후면 RCA 입력단을 사용하면 그만이다.
데어드 진공관 앰프는 다름 아닌 2채널 다기능 리시버라고 하면 좋을 듯싶다. 기본적으로 앰프면서 튜너와 DAC 등의 기능을 한다. 물론 요즘 올인원처럼 네트워크 스트리밍이나 블루투스, 에어플레이는 지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차피 책상 위에서 그런 기능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EQ 기능이다. 요즘 음질적인 이유로 생략된 경우가 많지만 간소하게 책상 위에서 다양한 EQ 로 조절하면서 음악 듣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DR-100MKII 는 Bass Boost, Jazz, Live, Vocal Acoustic 등 네 가지 이퀄리이저 모드를 지원하며, 만일 원하지 않으며 완전히 끌 수도 있어 실용적이다. 전면 헤드폰 단자도 책상 위 음악 가상엔 필수다.
"셋업"
데어드 DR-100MKII는 홍콩 메이커로 디자인은 물론 여러 부분에서 완성도가 꽤 높다. 부품들 또한 가격을 생각하면 제법 좋은 부품을 사용했다. 특주 EI 타입 트랜스포머에 내부 배선재는 무산소 동선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니치콘, 파나소닉 등의 부품들이 실장되었고 단자들도 모두 금도금이다. 특히 전면 디스플레이는 OLED 방식으로 책상에서 멀리 떨어져 2미터가 넘어도 선명하게 글자를 읽을 수 있다.
제품은 박스에 심플하게 담겨있다. 제품 본체와 함께 모든 기능을 컨트롤할 수 있는 앙증맍은 플라스틱 리모콘, 그리고 FM 안테나와 3.5mm 미니 잭용 케이블과 설명서, USB 케이블은 물론 설치시 사용하라고 장갑까지 챙겨넣었다. 편의성 측면에서는 고가의 하이엔드 앰프보다 오히려 나아보인다.
간단히 PSB 알파 B1을 스탠드 위에 놓고 DR-100MKII 의 전원을 올린다. 잠시 어여쁜 외관을 감상하다보니 금색 워밍업이 끝난다. PC에서 바로 USB 케이블을 끌어와 연결하고 푸바2000에서 출력 기기를 DARED 로 선택하고 주로 무손실 음원들을 들어보았다.
"사운드"
Norma Winstone - Distance
이런 소리가 그리웠다. 최근 이런 저런 솔리드스테이트 앰프를 사용하다가 캐리 300B 로 꽤 오랫동안 목말랐던 진공관의 배음에 위안 받고 있던 터였다. 데어드 DR-100MKII 는 그런 와중에 나의 리스닝 룸에 들어와 또 한 번 즐거운 음악 감상을 북돋았다.
노마 윈스톤의 ‘Distance’에서 피아노 타건의 울림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처연하기까지 하다. 이어 오버랩되는 보컬은 쓸쓸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깊게, 더 깊게 침잠하는 레코딩의 분위기가 깊고 아련하다. 진공관의 배음은 맑고 편안하게 청자를 이완시키며 풍부한 잔향을 흘린다. 극강의 해상력으로 재단한 소리가 아니라 부드럽고 편안하게 이완시키는 따스한 소리가 향기롭다.
John Scofield - Chap Dance
존 스코필드의 ‘Chap dance’ 에서는 색소폰의 중역대역 혼의 울림이 술술 넘어가는 목 넘김처럼 담백하다. 기타, 드럼, 더블베이스의 인터플레이가 긴박하고 리드미컬하게 펼쳐지는 와중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크지 않고 유려하다.
손 안에 움켜지고 팽팽하게 조이는 하이엔드 사운드를 듣다가 들으면 따스하고 촉촉한 잔향이 자연스럽게 노니는 광경에 자연스레 미소를 머금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탁하거나 마스킹될 정도로 한없이 늘어지는 소린 아니다. 음장 형성도 뚜렷한 편이며 특히 중역 대역의 색소폰 등에서 디테일은 어설픈 TR 보다 또랑또랑하고 싱싱해 감칠맛이 살아있다.
볼륨을 15까지 올려 조르디 사발의 [La Folia] 앨범에 수록된 고음악들을 연주해보자.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음량과 넓은 공간에 풍부하면서도 작극 없이 풀어놓는 하모닉스가 음악적 표정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음량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6E2 진공관의 푸른 불빛이 오르내리며 귀 뿐만 아니라 눈까지 즐겁게 만든다.
아롱아롱 타오르는 불빛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금세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 전 대역 평탄하게 깎아내린 듯 한 선예도는 부족하지만 덕분에 BGM 으로 틀어놓아도 신경을 자극하는 일이 없다.
분위기를 전환해 헤비메탈 밴드 메가데스의 [Dystopia]를 들어본다. 록 음악에서는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들려준다. 매우 날카롭고 날렵한 데이브 머스테인의 기타 연주가 꽤 앙칼지며 박력 있게 들린다. 설계상의 한계로 육중한 투 베이스 드럼까지 제대로 표현되진 않지만 많은 저가 진공관 앰프처럼 느리고 흐릿한 느낌은 어디에도 없다.
중, 저역의 헤비한 임팩트만 양보한다면 다이내믹한 록, 팝 음악에도 매우 매력적인 소리다. 명징한 중, 고역 대역과 결코 느리지 않는 리듬&페이스 덕분에 오랜만에 듣는 록음악이 통쾌하다.
데어드 DR-100MKII 는 책상 위에서 차고 넘치는 앰프다. 실제로 타겟 스탠드 위에 PSB 알파 B1을 올리고 들어봐도 밸런스나 출력 면에서 그다지 부족하지 않은 소릴 들려주었다. 알고 보니 데어드는 Dignified, Artistic, Reliable, Elegant, Decent 의 이니셜을 딴 약자였다. 수석 사운드 엔지니어인 할리(Harley) 박사는 스스로 진지한 오디오 마니아이며 음질과 디자인에 있어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앰프는 매우 작동이 매우 조용하며 작동감이 무척 매끈하다. 뭔가 불편하게 만드는 거리낌이 없는 인간공학적 설계다. 사운드에 있어 간결한 구성에 얻을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지점을 정확히 찾았다. 그리고 음질 위주로 설계한 점이 안정적인 동작과 뛰어난 음질로 귀결된 것으로 보인다. 김과장은 아니지만 나도 책상 위 구형 미니앰프를 치우고 데어드를 하나 들여놔야 할까보다.
Writteny by 칼럼니스트 코난